겨자씨 에세이

여호와 보시기에

김 열 2011. 12. 17. 19:47

 

 

 구약 성경 열왕기서와 역대서에는 북 왕조 이스라엘과

남 왕조 유다 왕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남북 열왕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시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 중에 어떤 왕은 정치와 통치를 잘하여 평안과 호황의 시대를 보내나,

많은 왕들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고 백성들까지 악행을 이르게 하여

전쟁과 궁핍 그리고 여러 환란에 빠지게 함을 보게 된다.
이런 역사의 기록이 성경에 있음은

우리의 삶에 거울로 비춰보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런데 기록들 중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있는데
그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말씀이다
.
어떤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어떤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한지라,’ 라는 기록이 반복된다.


  존재의 소모적 논쟁은 무가치 하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냐? 안계시냐? 하는 논쟁을 하고,
계신다면 증거를 내봐라 하지만 성경은 그런 의문에는 일체의 답을 말하지 않는다
.
반면에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눈에 대해 수없이 말씀하신다
.
여러 열왕들 중 어떤 왕은 그 눈을 의식 하고 그 앞에서 정직히 행하나
,
악행을 일삼는 왕들은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믿음 없이 행하다 심판을 받았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계시하고

성경대로 믿는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게 한다.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한다면

배우지 않고 지식을 논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랴?

 


  머리카락까지 세신 하나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 하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허구로 끝날 것이라고 말하고 실제로 이방 종교에서는 그것이 귀정사실인 양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 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대한 부분은 더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
기독교 안에서 세대주의 성경해석학파가 있는데,

이른바 인류역사를 6000년으로 해석하는 학파들이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도 그들의 해석을 거의 듣지 않는다
.
비난하는 무리들은 이 세대주의 학설이 기독교해석의

전부로 치부하고 비난하나 그들은 극히 제한적 존재들일 뿐이다.

과학이 발달 할수록 우주나 살아 있는 생명체 등이
너무 정밀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전능자의 손길을 알게 된다
.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신바 되며,

우리의 생각까지도 감찰 하신다고 하셨다.
그러기에 골방에서 속으로 기도해도 다 들으신다고 하셨다
.
그리고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 중 그들의 의중을 드러냈다
.
머리카락까지 세시며 골방에 있는 우리의 생각까지

감찰하신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주 아니고 누가 창조주란 말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수술하거나 치료할 때 기도를 부탁 한다.
왜 그런가?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병을 낫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많은 법률가들이 성경을 늘 상고한다.

왜일까?
하나님의 양심만이 가장 바르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양심에 가까이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
그 하나님의 눈,

 ‘여호와 보시기에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히 행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만물이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하기에 자기 양심을 따라 행한다.
거듭나지 못한 원죄 아래 있는 양심이 바른가?

거듭난 사람의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삶이 바른가?
그것은 성경이 증거 한다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우상에 빠지고사술을 행한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