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에세이

이혼의 아픈 잔

김 열 2012. 3. 6. 19:44

 

  부끄럽게도 이혼율이 OECD 국가중 1위로

올라 섰다가 다시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2003년까지만 해도 미국,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 였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금메달을 한 때 목에 걸고 말았습니다.

쉽게 방망이를 두드려 쉽게 갈라섰는데 조정기간을 두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후 이혼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성이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인 일본의 이혼율이 낮은 것이 이상합니다.

2003년 12월 23일 한국일보



             붉은 것은 부끄러움을 보여줍니다.

            부끄러움이 있어 얼굴이 붉어진다면

            아직 순수함과 깨끗함이 속에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동녘도 빨갛고 서녘도 빨갛습니다.

그러나 정오에는 붉은 빛이 안보입니다.

동녘은 시작이요. 서녘은 마침입니다.

누구나 시작과 마침은 순수하고 정직합니다.

인생의 시작인 태어남은 신비롭고 새롭지만 황혼을 지난

마지막 순간에는 참회와 아쉬움의 정직함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의 붉은색을 품고 살아 봅시다. 시작의 설렘과 부끄러움을... 

잘못을 한 후에는 얼굴이 붉어집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 봅시다.

 

  결혼도 시작의 부끄러운 붉은 색이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

결코 이혼이란 쓰라림을 맛보지 않겠지요.

혹시 배우자의 부정이 발각되어 이혼을 결심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런 생각도 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재혼을 할 것이라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재혼했다고 생각하고 사시기를 권해 봅니다.

처녀, 총각과 재혼 할 것도 아니고, 또 재혼 한다면

여러 부분을 맞추어 가면서 사는 고생을 해야 할 것인데

차라리 지금까지 맞추어 온 사람보다 나을 수야 없겠지요.

여러 재혼 부부들을 보아 왔지만 초혼처럼 마음과 몸이

하나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데 순간의 실수로 부정을 저질러 후회하고 있다면

정직한 고백을 하고 서로 덮어두고 사는 것도 재혼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죽을 때까지 같이 살겠다고 손들고 맹세 하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죽음 말고는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결혼은

우리 주님께서 가나까지 가셔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축복한 귀한 일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친히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입니다.

말씀 위에 선 견고한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로 참회한 배우자의 실수를 덮을 수 있는

또 다른 눈물의 기도는 우리의 십자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