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살리라

김현승 시에 나타난 신앙과 고독

김 열 2011. 12. 9. 10:54

1, 김현승의 생애


  다형 김현승
( 1913~1975)은 술과 담배를 일체 하지 않고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다형이란 아호를
지녔다고 한다
.
김현승은 장로교파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의 차남으로 기독교 계열의 학교인 광주의 숭일
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평양의 숭실 중학교를 수학한 후 졸업 한다
. 1932
년에 숭실 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2학년에 진급하자 위장병으로 휴학을 한다. 다음해에 복학하여 학업을 하면서 시도 이 때부터 쓰기 시작 한다
.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념한 2편의 장시를 지은다.
이 시가 당시 교수로 있던
양주동의 눈에 띄고 양주동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발표 되면서 문단에 데뷔 하게 된다.

그 후 모교인 광주의 숭일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같은 교사인 장은순과 결혼을 한다.
조선 대학교와 서울의
숭실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하면서 계속 시 작 활동을 한 다형은 문인협회 이사와 부이사장 등의 요직을
맡아가며 문단 활동도 한다
. 19733
월 아들의 결혼식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졌으나 곧 병세가 호전되어 계속
활동을 하다
1975411일 숭전 대학교에서 채플 시간에 기도하다가 다시 고혈압으로 쓰러져 별세 했다.

다형은 소천하기까지 그의 시가 많이 읊어지지 않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1970년대까지 기독교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나 언젠가는 고독한 시가
知己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
그런데 40년이 지난 후 지금 김현승 시에 대한 논평집이 10여권, 박사논문 15여 편, 그리고 50여 편이 넘는
석사 논문이 발표 된 것을 보면서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해도 시를 사랑하기에 최선의 땀을 흘렸던
작가의 숭고함이 점점 결실을 맺음이라 하겠다
.

 

2, 자연과 함께한 신앙과 조국


  김현승의 초기 시는 자연을 예찬한 듯 보인다
. 그가 시를 막 쓰기 시작한 1933년은 일제의 식민지로서 나라를
잃은 망국적 상실감이 젊은 시인에게는 컸으리라 여겨지며 이런 마음이 그의 초기 시에 나타난다
.
불행한 민족
현실 아래서 정직한 자연을 대하면서 민족의 염원과 미래의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 동아일보
에 실렸던
그의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고 합니다.”를 보자.

 


새까만 하늘을 암만 쳐다보아야 어딘지 모르게 푸르러터니
그러면 그렇지요, 그 우렁차고 光明한 아침의 先驅者인어린 새벽이
벌써 희미한 초롱불을 들고 四方
을 밝혀 가면서
거친 과 낮은 들을 걸어오고 있었읍니다그려
!
아마 동리에 수탉이 밤의 寂寞
을 가늘게 찢을 때
잠자던 어느 골짜기를 떠나 분주히 나섰겠죠.

여보세요. 당신은 쓸쓸한 저녁이 올 때 얼마나 슬퍼하였읍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해가 거친 山頂
에서 붉은 피를 쏟고
感想詩人인 까마귀가 黃昏悲歌
를 구슬피 불러
답답한 어두움이 坊坊谷谷
에 숨어들 때
당신은 끊어져 가는 날의 숨소리를 들으며 永遠한 밤을 슬퍼하지 않았읍니까
?
그러기에 당신은 또한 絶望을 사랑하기에 輕率하고
,
感情을 달래기에 퍽도 理智하였다는 말이지요.
地球의 구석까지 들어 찰 光明을 거느리고, 勇敢스러운 해는
어둡고 險峻한 비탈과 絶壁을 또다시 기어오르고 있다는 걸요.
이제 그 빛난 얼굴을 東方山 마루에 눈이 부시도록 내어 놓으면
모든 萬物은 歡呼를 부르짖고
새로운 經綸을 이루어 나간다 합니다.
힘있고 새로운 歷史가 光明한 그 아침에 쓰여진다 합니다!
저것 보아요. 어두운 밤을 지키고 있던 把守兵丁인 별들은 이제 쓸데 없고요.
그리고 당신이 작은 樂天家라고 부르는 고 얄미운 참새들이
어느새 해를 歡迎하겠다면서 어린 이슬들이 밤새도록 닦아 놓은
빨래줄 위에 아주 저렇게 줄지어 앉았겠죠.
평생 지껄여야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도 많은지.

그러면 글쎄, 참새들은 지금
이른 아침 새벽 偵察 나온 구름의 이야기를 하고있읍니다그려!
저걸 좀 보아요. 우렁차고 늠름한 기상을 가진 흰 구름들이 東方에서 일어나
오늘은 벌써 西部遠征의 새벽 偵察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나간 여름에 저 구름들이 黃河沿岸을 공격하였을 때
너무도 지나진 勝利를 하였다고 합니다그려.
그러니 어찌, 感想詩人인 까마귀들만이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요.
아마 黃昏에 읊을 詩材를 얻기 爲하여 지금 저렇게 山을 넘어
거칠고 쓸쓸한 曠野로 나가는가 봐요.

편에선 언제나 가장 높은 체하는 험상궂은 봉우리가
아직도 해를 가리우며 내어 놓지를 아니하는데
그 얌전성 없는 참새들은 못 기다리겠다고 반뜻한 줄을 흩으리고
그만 다들 날아가 버리겠지요
.
그러난 그 차고 넘치는 햇발들이 四方으로 빠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기에 어제밤 당신을 보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
밤을 뚫고 數千 數百里를 걸어 나가면 光明한 아침의 先驅者
인 어린 새벽이
희미한 등불을 들고 또한 우리를 맞으려 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조국의 현 상황이 아무리 쳐다보아도
새까만 하늘같은 현실과 황혼의 비가를 부르는 까마귀 같은
침략자들을 있어도
광명한 아침’ ‘선구자의 어린 새벽’ ‘희망의 등불
같은 밝은 날이 수탉의 예고와 함께
우리를 찾아오리라는 희망의 마음을 볼 수 있다
.
징계를 받아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회개를 통해 신과 회
복하고 끊겼던 축복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기독교적인 생각이 느껴진다
.

 


새벽의 보드러운 촉감이 이슬 어린 창문을 두드린다.
아우야 남향의 침실문을 열어제치라
.
어젯밤 자리에 누워 헤이던 별은 사라지고
선명한 물결 위에 아폴로의 이마는 찬란한 반원을 그렸다
.

꿈을 꾸는 두 형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얼싸안고 바라보는 푸른 해변은 어여쁘구나
.
배를 쑥 내민 욕심 많은 풍선이 지나가고
하늘의 젊은 퓨리탄
동방의 새 아기를 보려고 떠난 저 구름들이
바다 건너 푸른 섬에서 황혼의 상복을 벗어 버리고 순례의 흰옷을 훨훨 날리며
푸 른 수평선을 넘어올 때
어느덧 물새들이 일어나 먼 섬에까지 경주를 시작하노라
.

아우야 얼마나 훌륭한 아침이냐
.
우리들의 꿈보다는 더 아름다운 아침이 아니냐
.
어서 바다를 향하여 기운찬 돌을 던져라
.
우리들이 저 푸른 해안으로 뛰어갈 아침이란다.

--아침에서

 

  1934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된 이 시는 새벽’ ‘푸른 해변’ ‘푸른 해안으로 뛰어갈 아침등을 통해
순리적 자연회복을 예찬하면서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
상실된 조국의 절망적인 상황을 훌훌
벗어 버리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꿈꾸는 두형제는 암흑의 황혼의 상복을 벗어 버리고
신대륙에 이른
청교도의 시작같이
하늘의 젊은 퓨리탄되어 동방의 새 아기를 보기 원하는 민족적 염원을 내 보인다
.
자연을 예찬 하며 희망의 아침을 노래 한 이 시에도 하늘의 젊은 퓨리탄’ ‘순례의 흰옷
을 통해 그의 의식
깊이 박혀있는 신앙의 세계를 볼 수 있다
.

 


3, 고독한 시인의 눈물과 미련

 


   6.25
의 쓰라린 아픔을 겪으면서 김현승 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닥친다. 6.25의 와중에 부친상을 당한 후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다
.
고난 가운데서 신 앞에 흘린 눈물은 진주를 만들어낸 조개처럼 귀한 보석을
만들어 낸다
.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져......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이 시는
1952년 서정주가 출간한 계간지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작품이다. 작자는이 시는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나의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애통한 중 어느 날 문득 얻어진 시다
.
나는 내 가슴의 상처를 믿음으로 달래려고
썼다
. ‘인간이 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범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오직 썩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 앞에 흘리는 눈물뿐일 것이다
.’ 라는 것이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는
눈물을 좋아 하는 나의 타고난 기질에도 잘 맞는다
.”??
화려한 꽃보다는 열매가 더 소중하기에 인생의 기쁜 웃음의
때보다는 눈물의 아픔의 때를 겪으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는 영양분을 얻는다
.
시인이자 전주 우석대 송하선
교수는
그동안 김현승이 민족적 로맨티시즘이라는 경향의 시와 外界의 자연에 눈을 돌리고 있었는데 이 시는 外界
로부터
자신의 내면세계로 눈을 돌리는 중요한 고비를 이루는 작품이다
.’??라고 평한다.
내면세계로 눈을 돌린 시인은 그동안
당연시 하며 믿어 왔던 신에 대한 의문과 자신 속에 신앙을 점검하면서 점점 신과 멀어져 간다
.
어쩌면 부친과 아들의
사망 그리고 부친의 뒤를 이어 목회의 길에 들어선 형까지 떠나고 난 여러 상실감이 회의로 다가와 점점 신을 떠난
지도 모른다
. 이때부터 김현승은 신을 떠난 고독을 그의 시에 드러낸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혼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준다
.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
꿈으로 고인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보낸다
.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
더 나아갈 수도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

---절대고독에서

 


   이 시에서 그는 영혼의 먼 끝을 만지면서 잠에서 깬다고 노래한다
. 나면서부터 물러 받은 모태신앙과 목사 가정에서
순응적으로 받은 믿음의 생활이 잠처럼 느껴졌는지 깨려고 하면서 신에게 독립을 선언한다
.
이 때 김현승은 믿음에
대한 회의를 느낀 것을 몇 가지 들고 있다
. 1계명의 나 외에는 다른 신을 공경하지 말라.”
는 말씀에 유일신을 의심하고
영광은 신께 불행은 악마에게 돌리는 이원론적인 모순을 갖는다고 하였다
.
이런 회의는 신과 계속 거리감을 갖게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 질수록 깊은 고독에 빠진다
.
그 고독은 신과 이별을 선포하였으나 완전히 신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원초적 씨앗이 꿈틀거리고 있음같이 다시 신을 찾는다
.
이 시기에
김현승은
절대 신앙을 짓는다.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

---절대 신앙에서

 


   집을 떠난 탕자처럼 몸은 신을 떠났지만 영혼까지는 떠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견고한 고독」 「고독의 끝으로
멀어져 갈려고만 한다
. 그러나 아무리 멀어지려고 해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나는 윤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신을 부정할 수 있으면서도 내 안에서 활동하고 명령하는 양심은 부정할 수 없다.'

라고 한다. 양심은 동물이 고도로 진화한 들 가질 수 없는 존귀하고 신성한 것이기에 모든 부분에서 신을 부정하다
가도 양심의 존엄성 앞에 이르면 진화의 결과 보다는 누군가에게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

 


모든 것은 나의 안에서
물과 피로 육체를 이루어 가도,

너의 밝은 은빛은 모나고 분쇄되지 않아

드디어는 무형하리 만큼 부드러운
나의 꿈과 사랑과 나의 비밀
살에 박힌 파편처럼 쉬지 않고 찌른다
.

모든 것은 연소되고 취하여 등불을 향하여도
,
너만은 물러나와 호올로 눈물을 맺는 달밤
.....

너의 차거운 금속성으로
오늘의 무기를 다져가도 좋을
,

그것은 가장 동지적이고 격렬한 싸움!

---양심의 금속성에서

 

 


   변질되지 않는 금속 같은 양심은 자기로부터 추방당한 신이 최후의 보루로 그에게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 절대 고독」 「절대 신앙보다 먼저 1958년에 발표된 이 시는 신을 떠나서 고독을 느낀 내내
살에 박힌 파편처럼 쉬지 않고 찔렀는지도 모르겠다.

4, 신과 화목과 희망 시

 

신을 떠났다고 하면서 고독을 말했던 김현승은 신이 남겨 둔 양심 속의 흔적은 지울 수 없었던지 말년에 절대
신앙으로 급속히 회귀한다
. 김현승의 제자라고 자청한 권영진씨에 의하면 1973
년 아들 결혼식 때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그 좋아하던 커피도 마시지 못하였다
. 그리고 내가 그동안 교만했던가 봐,
하나님이 내 뒤통수를
쇠망치로 내리친 거야
!’라며 참회하는 듯 한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 후 김현승은 젊은 날의 신앙을 돌아보며
땅 속 깊이 박힌 견고한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
. 참회 후는 회복이 찾아온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음의 터널을
지나 부활이 이름과 같다
. 갈등과 방황, 그리고 교만은 무덤 속에 장사 지내고 맞이한 부활의 새아침은 새롭고 자유롭다.

 

당신의 핏자욱에선
꽃이 피어-사랑 꽃이 피어
,
따 끝에서 따 끝에서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당신에게 열매 맺게 합니다
.

당신은 지금 무덤 밖
온 천하에 계십니다-
두루 계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
당신은 그 손의 피로 로마를 물들게 하셨읍니다 '

당신은 지금 유태인으 예 수의를 벗고
모든 4월의 관에서 나오십니다.

---부활절에에서

 

  

  참회하고 난 후 그의 마음은 무덤 밖에 있다. 불신앙의 회의는 무덤 속에 묻혔고 잔인한 4월의 관에서 나와 자유롭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신과 합일을 이룬 시인은 ‘~합니다.’하셨습니다.’ ‘나오십니다.’
라는 종결 어미로 신의 은총을
찬양한 듯하다
. 부활절에보다 1년 전 1974년에 발표한 이별에게
에서는 지난날의 회의를 지우고 싶었는지
지움과 흩음을 말한다
.

 

지우심으로
지우심으로
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
......

흩으심으로
꽃잎처럼 우리 흩으심으로
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
......

비우심으로
비우심으로
비인 도가니 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
......

사라져

오오
,
永遠을 세우실 줄이야
......

어둠 속에
어둠 속에
寶石들의 光彩
를 길이 담아 두시는
밤과 같은 당신은, 오오, 누구이오니까!

 

 

  ‘지우심’ ‘흩으심’ ‘비우심’ ‘어둠이미지는 제목 이별속에 함의 되어있다. 이별은 헤어지는 것, 즉 사라짐의
존재를 전제하므로
지우심’ ‘흩으심’ ‘비우심세 이미지와 연관을 알게 되지만 마지막 어둠은 어떤가
어둠의
기능성을 생각해 보면 다른 대상을 덮어서 지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갈등과 번민은 어둠 속에서 지우고
비워졌다
. 그리고 그의 영혼에 보석의 광채를 길이 담음을 노래한다.

 

 

나의 희망,
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
황금이 되어
불 같은 손을 기다리고
,

너의 희망
,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나의 희망
,
아득한 바다에 뜨면
수평선의 기적이 되어
먼 나라를 저어 가고
,

너의 희망
,
나에게 가까이 오면
나의 사랑으로 맞아
뜨거운 입술이 된다
.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
!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에도
,
내가 찾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 끝으로
희망에서 불을 붙여 온다
.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때에도
우리의 무덤마저 빼앗을 때에도
우릴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

우리에게 한 번 주어 버린 것을
오오, 우리의 신()
도 뉘우치고 있을
너와 나의 희망! 우리의 희망!

---희망에서

 

 

  김현승이 소천 하던 해 1975년에 발표한 시이다. 절대 신앙으로 귀의 하면서 신과 다시 화목한 마음에는 희망이
떠오른다
. 희망은 땅에서는 황금, 하늘에서는 별, 바다에서는 기적이 되어 시인에게 입 맞춘다.
그리고 희망과 신은
우리가 되어 버렸다
. 김현승 그는 시인은 시에서는 거짓말을 못한다고 했다.
기독교를 믿으면서 인간적인 고독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확실히 모순이나
. 그러나 나의 고독은 절망적인 고독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부모 있는 고아와 같은 고독이라면
궤변일지 모르겠다
. 라고 했다.
인생 종착역이 다다른 지점에서 절대 신앙으로 귀의한 그는 부모를 찾은 고아가 그 품에서
평안함을 갖는 듯하다
.

 

 

 

5,맺으며

  한 시인이 순응한 삶과 갈등, 고독을 거친 후 더 성숙한 모습으로 귀의 하게 됨은 신의 섭리가 있는 양 신비감을 느낀다.
기독교를 배경으로 성장한 김현승의 시 세계에서 그런 사이클을 느낀다. 그의 시, 1
기는 보수적인 신앙과 조국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새 시대 도래를 소망한 시를 자연 예찬과 더불어 노래한다
. 그리고 2기는 민족적인 비극 6.25
와 그에게
닥친 복합적 비운으로 마음 아파하다 이제 전통적 신앙에서 벗어나 갈등과 회의를 거친 후 신을 떠난다
.
그리고 고독을 되뇌인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는 집으로 돌아가고픈 탕자의 양심이 꿈틀 거린다. 3
기는 절대 신앙으로
회귀한 후 참회와 견고한 신앙의 뿌리를 박고 희망을 노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