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생각

영원한 것과 소멸될 것

김 열 2012. 6. 10. 12:46

 

 

 

  성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다.

막11장의 주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사건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주님의 한마디 저주에 인격도 없는 식물이 말라 죽어버린

일은 제자 베드로가 보기에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였지만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기이하게 들려지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왜 때도 아닌데 무화과나무에게 열매를 요구 하셨고

열매를 드리지 못한 나무에게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실

필요까지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성경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 놓는다.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기에 주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의

멸망과 참혹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선동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그리고 율법아래 있던

사람들은 주의 핏 값을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라 하였는데,

2000년 역사동안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마침내 2차 대전 중에 600만이나 학살당하고 만 것을 역사를 통해 잘 안다.

학자들의 해석처럼 바싹 말라 버린 무화과를 봄과 같은 생각이 든다.

 

  비유야 어떻든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건의 해석이 아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창조주이심을 증거 한다. 그의 말에 풍랑도 바람도 순종하였고

영적 존재인 귀신과 문둥병 혈우병 등등의 병과 죽은 시체까지도 순종 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니 필요하실 때 요구하실 권리가 있다.

주님이 요구 하실 때 드릴 수 없는 것은 나중에 썩어서 소멸 될 것이기에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요, 드릴 수 있는 것은 참된 존재의 이유라 하겠다.

주님께 드려지면 주님의 영원하심과 같이 영원한 것으로 변환된다.

그러나 주님께 드려지지 못한 것은 억만금이 되어도 세월이 가면 낡고 소멸될 뿐이다.

주님이 요구하시니 빈들의 소년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드렸고

나귀주인은 예루살렘 입성하신 주님께 나귀를 드렸으며, 아리마대요셉은 자기를

위해 파놓은 무덤을 드렸고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드렸으며, 주의 모친 마리아는

하나님께 자신의 태를 드려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게 헌신 하였다.

이와 같은 일은 성경에 기록되어 성경이 땅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전해지고

영원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 것으로 존재할 것이니 귀하고 값진 일 아닌가?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소멸될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 있음을 감사하나이다. 소유, 땀, 헌신, 고뇌, 심성 등등 드려져

          영원하다면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드리지 못해 말라 버린 무화과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