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생각

영혼을 어디에 맡길 것인가

김 열 2011. 11. 19. 22:12

 

  시니바나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노인들의 영화로 죽음 후를 생각게 하는 영화이다.

겐다라는 사람은 집에 관을 마련해 놓고 자주 들어가고 몸이 아프면 들어가서 자기도 한다.

친구인 기쿠시마라는 사람은 관 속에 들어가더니 지그시 눈을 감고 ‘아 죽고 싶다.’라고 하면서 관속이 편하다고 한다.

죽음을 아름답게 대비하려는 마음을 잘 표현한 영화이지만 관람 후 ‘잘 죽는 것만이 끝인가?’

하는 긴 의문의 꼬리표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답고 멋있는 장례식 보다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영혼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누구나 갖고 있다.

그 영원한 관계를 누구와 가질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하겠다.

 

 

  후손들에게 영혼을 맡기려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자식이나 손자에게 ‘나 죽으면 제사 잘 지내주라’ 한다.

제사를 통해서라도 후손과의 관계를 잇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죽고 나서 기일에 자신의 영혼이 후손들에게 찾아 올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이다.

영혼의 갈림길을 알 수 없다면 ‘사잣밥’ ‘제사비용’ ‘제사예절’ 등으로 자식들끼리 싸우고 다투는 복잡한 절차 보다는

생전에 ‘선친들의 아름다운 덕을 기리는’ 추모식이 얼마나 나은가?

그리고 자식들도 자신들 영혼 문제도 고민스러운데 조상들의 영혼까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생명보험과 바꾸려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생명 보험에 들어 있기에 든든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늙어 아프거나 죽을 때 자식들에게 비용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근본 영혼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우상 앞에 맡기려는 사람들

 우상은 분명 사람의 손으로 제작한 것이다. 화려하고 인자하다고 자비롭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제작자의 기술일 뿐이다. 참 지혜 자들은 그런 우상을 무시하고 성인들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아직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상 앞에 천배를 드리니 무슨 정성을 드리니 하면서 우상을 섬긴다.

그리고 그 우상에게 영혼을 맡긴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 영계에 들어온 인도 종교인의 모습을 전하는 구절이 있다.

인도의 종교인들은 우상을 앞에 놓고 열심히 섬긴다. 그리고 그가 죽어 자신이 섬겼던 주를 찾았으나

천사가 말하길 ‘이 곳에서는 그리스도 외에는 구주가 없습니다.’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더라고 했다.

성경은 예수가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다.(요5:27)

내가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이를 자가 없느니라.(요14:6)

 

 

  영혼은 오직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교과서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죽기 전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시면서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본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주의 제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주예수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라고 했으며

숨이 멎기 직전에 ‘보좌에 서 계신 주를 보노라.’ 하고 죽었다. 그리고 그 후에 수많은 주의 제자들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하고 순교 하였다.

 베드로는 ‘우리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 지어다.’ 하였다.

 영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신앙생활은 영혼을 하나님께 맡겨 놓고 사는 생활이다.

성경에는 천하 제물 권세 모든 것을 얻고도 영혼을 잃어버리는 자는 다 잃어버린 것이며

영혼을 영원한 하나님께 맡겨진 사람은 다 얻는 것이라고 하였다.

'겨자씨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역전은 믿음으로.  (0) 2011.11.26
티를 빼라는 들보 눈  (0) 2011.11.21
십자가의 도  (0) 2011.11.14
평안할 때 기도하자.  (0) 2011.11.07
믿음은 지옥을 초월하고 재기하는 능력이다  (0) 201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