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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활 - 제2장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미신자<2-1>

김 열 2011. 11. 6. 12:32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활

 

제2장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미신자<2-1>   

 

그리스도의 감화

 

인도에서 기독교사업에 종사하며 여러 계급의 사람들과 접촉한 자는 아직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 않으나 꽤 많은 사람들이 은밀히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일은 많고 적고간에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또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 들이지 않은 많은 사람 중에도 제 나라의 재래 종교의 교훈이나 그 중의 영적지도자로부터 받은 감화보다도 더 깊은 감화를 그리스도로부터 받고 있는 자가 많다.

 

나는 인도의 미신자중 지도자 되는 인물로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큰 감화를 받으면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들을 정복하였는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적(敵)에의 감화

 

자기의 신앙에 열심인 때문에 기독교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에 있는 자에게까지도 그리스도의 감화가 종종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은 그들이 항상 자기의 종교를 검사하여 그리스도의 교훈 속에서 이것을 개선하려고 구하는 경우에 많다. 그들은 기독교의 의식을 채용하여 그 종교의 근대적 표현을 하기 위하여 가끔 그들 속에 있는 낡은 교리의 말을 새로운 내용으로 바꾸어 삽입(揷入)할 때 직접 또는 간접으로 기독교로부터 얻은 것을 가지고 한다.

 

그들이 이 방향으로 아주 몰두하였을 때에는 스스로의 종교를 기독교의 표현 방법으로 옷입혀 나타내는 일이 적지 않다. 그 결과 많은 기독교 신자나 또는 구라파 학자들까지도 속임을 당하여 기독교와 다른 세계의 대종교 사이에 크게 다른 것이 없는 줄로 상상한다.

 

이 장에서 나는 비기독교적 환경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그 생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를 말리지 말라

 

좁은 마음을 가진 기독교 신자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사회적으로 기독교 단체에 속하여 있지 않으면 신자로 생각지 않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그들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나 그들은 결코 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 다른 크리스챤의 봉사활동보다도 훨씬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보통 크리스챤이 갈 수 없는 곳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 단체중의 누구의 이름도 밝히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과 그 활동에서 이것을 말하여 줄 수 있다. 그들의 위치는 꼭 요한이 주님의 주의를 불러 일으키려고 하여 말한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하고 말한 사람과 같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눅 9:49-50).

우리들중 이처럼 인정받지 못한 봉사자는 일을 금지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을 금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이를 금할 무슨 권리가 있겠는가?

 

 

은밀한 예배

 

나는 단체활동을 통하여 그들이 받은 능력과 빛으로 주를 위해 은밀히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몇차례 만나 본 일이 있다.

 

어떤 날 나는 그들 중의 한 사람을 찾아 갔다.

 

"왜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주를 고백하지 않습니까?" (막16:15-16)

 

"우리들 사회는 몇천명의 남녀가 있으며 저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계급도 다릅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에 대한 예배와 봉사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 단체는 잘 조직되어 있지만 우리들의 활동은 은밀히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이들 수천명 앞에서 고백한 것은 고백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까? 활동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겉으로 나타나게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며 은밀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의 육체에도 내부와 외부의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한 마음에 의해 지휘되어 있습니다. 그 기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주 다릅니다.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그리스도의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크리스챤은 다 같이 소금이며 누룩이어서 조용히 그리고 소리없이 다른 것에 맛을 내고 또 불게 만듭니다.

 

그리스도는 또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부는 그물을 던질 때에는 조용히 소리를 내지 않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기는 모두 숨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들 단체에는 크고 작은 몇백의 고기가 있습니다. 한 때는 떠들썩한 어부들을 보고 그리스도로부터 도망쳐 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은 그 자신의 보호속에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시므로 누구나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또 그들은 이 소리없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주 앞에 인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생활은 그리스도의 듯에 맞는지 어떤지 당신의 의견을 들려 주십시요"

 

 

참된 크리스챤의 생활

 

의심할 것도 없이 참된 크리스챤의 생활은 나타나게 하거나 은밀히 하거나간에 많은 열매를 맺는 생활이며 남을 선하게 만드는 외에 감화를 주며 진리의 탐구자는 그 생애의 사실을 보고 항상 생명의 원천으로 끌리어 간다.

 

그 하나의 예는, 어떤 때 두 설교자가 설교를 하려고 시장에 나갔다. 먼저 설교한 사람은 현명하고 웅변도 좋았다. 그가 말하기 시작하자 몇 분 되지 않아서 한 인도인이 질문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답하려고 말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설교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대로 대답했지만 질문한 사람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고 도리어 친구를 돌아보며 "이번에는 이 형제가 당신에게 대답할 것입니다"하고 말하였다.

 

다음 설교자는 웅변가도 아니요 재치 있는 토론가도 아니었지만 참된 크리스챤으로 또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질문한 사람 앞에 나타나자마자 그 인도인 질문자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무릎을 꿂며 가장 정중한 경의를 표하면서 첫번째 설교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에게 질문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의 생활을 알며,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그의 생활 속에 함께 한 것을 보고 그를 통해 구원의 도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논하려고 하는 것은 당신하고이며 당신은 입으로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영원히 다물어 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 친구를 몇년 전에 만났더라면 이렇게 긴 세월을 나의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조용히 오는 자가 올바르게 오는 자]입니다.

이같은 일 중에는 어떤 좋은 목적이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실 것을 바랍니다."

 

이런 말을 듣고 웅변가인 설교자는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한채 집으로 돌아갔으며 새로이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의 종과 함께 가서 그 생애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쳤다.

 

 

구(求)하며 찾아 냄

 

구하는 자는 찾아내며 찾아낸 자는 다시 그 이상의 것을 구하는 것은 보통 경험하는 일이다.

 

파스칼이 "네가 만약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것은 나를 찾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만약 인간이 신의 임재에 대하여 아무런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던가 노력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을 구태여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임재에 대한 지각을 이미 주셨다. 그러나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찾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그들 자신에 속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에 계신다. 그러나 그를 붙잡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마음이 주의하여 하나님께 연결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선전파의 소리를 들으려면 공중에 흐르는 노래나 연설을 받아 드리기에 적당하게 된 완전한 조화(調和)를 가지고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만약 조화가 잘 맞지 않으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공중의 전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탐구자

 

한 진리의 탐구자가 나에게 저의 경험을 말하였다.

 

"나는 이전에 가졌던 종교에서 위로는 받았지만 평화는 얻지 못했습니다. 이 위로는 나의 마음을 작극하여 참된 평화를 구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구하는 중에 한가지 이상한 도를 가지고 서서히 평화의 근원을 찾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 내 마음속의 자극이나 만족이 다 같이 살아 계신 그리스도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불안한 추구는 변했으며 지금은 그리스도 가운데서 평화를 얻고 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지난 일과 처음에 그리스도를 몰랐던 한 진리탐구자의 예에 따라 이같은 성령을 할 수 있다.

 

몇 해 전, 심한 기근이 있었을 때 상당한 신분이 있는 한 사람이 돈이 떨어져 아사직전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오만과 수치심 때문에 남에게 애걸하여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뿐이었다. 그의 기도는 즉시 응답이 있어 외국에서 갓 돌아온 한 상인이 그의 곤란한 소식을 듣고 밤에 은밀히 식량을 보냈다. 기도의 응답이 있은 것을 그는 무척 기뻐하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으며 어떤 날 상인이 이 사람을 방문하여 그가 필요로 하는만큼의 비용을 기부하였다. 그는 은인의 정신을 알았을 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여 무릎을 꿇고 그 사람 발에 입을 맞췄다.

 

이 은인은 그가 오랫동안 죽은 것으로 생각하여 오던 그의 형이었던 것이다.

 

 

한 판짓트 (주; 판짓트는 인도철학의 학자)

 

어떤 날 나는 순례자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간지스 강변에 있는 한 마을에 갔다.

마침 내가 한 장소를 택하여 서 있으려니까 판짓트 한 사람이 내 곁에 앉으면서 말하였다.

 

"당신도 다른 순례자들처럼 목욕하러 왔소?" 하고 묻기에

 

나는 "아니오, 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몸을 씻었으며 그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간지스 강에 들어가 형식적인 목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이들 순례자들에게 구주 예수의 이야기를 하려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듣자 그 학자는 놀랐으나 나의 놀라움도 적지 않았다.

 

그 때 그는 밝은 얼굴로 말하였다.

"아,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선생님, 나도 또한 같은 목적으로 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주 다정스럽게 나를 끌어안았다.

 

이 모양을 보고 몇 사람의 순례자가 우리들의 대화를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그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으며 그들은 주의를 기울여 설교를 들었다.

 

이윽고 한 순례자가,

"그리스도란 구리시나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화신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 때 판짓트는 범어의 시를 몇 절 되풀이해 외운 뒤에 말하였다.

"우리는 구리시나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오. 죄없고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샤스다라스 속에 약속된 사람입니다. 구리시나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고 그들을 멸망키 위하여 왔지만(기다경4:8),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마 9:13, 눅 9:56).

 

우리들의 설교가 끝났을 때 판짓트는 나를 그의 집에 데리고 갔으며 그의 처와 두 어린이에게 소개하였다. 그들은 모두 판짓트 자신처럼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다. 식사 후 우리는 몇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이같은 방법으로 몇 년동안 주님을 위해 일했다고 말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설교에 의하여 믿음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다른 선교사나 신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들이 땅에 뿌린 씨는 싹이 나서 자라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막 4:26-29)

 

나는 그에게 어떻게 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를 이야기 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나는 종종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반감때문에 선교사나 신자,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 감바메라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비밀 단체에 속해 있는 두 학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범어학자였으므로 처음에는 인도교 신자인 줄로 알았으나 차츰 그들은 아주 분명하게 그리스도만이 구주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며칠 동안에 나의 의심과 오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후 이 두 사람은 쥬므나 강에서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나는 나의 시간과 힘을 구주를 위해 바치는 데 써 왔습니다. 만약 내가 이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결코 기독교 신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  계    속  -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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