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립니다.
성경에는 십일조에 대한 귀절이 많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대제사장 멜기세댁에게 십일조를 드렸고,
야곱이 드렸으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라기서는 거의 십일조에 대한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십일조는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십일조를 어려서부터 배우면서 생활화 합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비난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하려고 하는 간계입니다.
그러면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할까요?
첫째 십일조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또 그 하나님이
창조주인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믿는다면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피조물인 것을 인정하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소득도 얻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죽으면 사용하던 모든 것 놓고 갑니다.
원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주고 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사람은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계명이기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심은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하심이 아니라 축복을 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에게 바치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천국 원리는 반드시 심어야 거두고, 주어야 받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도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주님의 손에 올려놓은 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자유로운 것 같으나
실상은 자기가 조물주의 자리 중앙에 앉아 있어 자기를 잃어버린 삶과 같습니다.
왜 그도 신이 아닌 피조물이니까요.
그들은 죽은 후에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만난 후 깨달으나 회개의 기회는 갖지 못하는 것이지요.
셋째 십일조의 계명에 대한 약속의 책임은 하나님이 지십니다.
말라기서에서는 십일조를 드려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그 말씀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시기에
계명을 지키면서 우리들의 창고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 그대로 지킨 자들에게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경제를 쥐다시피 한 유대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실천하며 사는 기독인들의 삶이 증거 합니다.
우상숭배한 자들은 나라를 뺏기고 노예처럼 살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 사람들은 다스리며 살았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기독인들이 많게는 한 주에 몇 억을 십일조로 드리고도
감사와 찬양하며 사는 것이 시험해 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증입니다.
넷째 십일조를 드리므로 거룩한 삶을 삽니다.
십분의 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립니다만
나머지 십분의 구도 감사하며 살기에 불필요한 낭비나
탐욕에 사용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십일조를 드림은 십분의 구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고 이기적인 자들이 십일조 폐지론을 운운하며
드리지 말 것을 선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사람의 말을 따를 것인가?
너무 쉽게 판별이 되며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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