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6 장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안다
만약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안다면 - 그가 누구이며 또 무엇인지를 - 자신이 그 모습을 닮게 만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안다는 것이 이 세상의 지식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주의나 이론은 때때로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멀게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은 내적인 소리와 감각을 말살시키는 원인이 되며 기교적인 딴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항상 사람을 그릇되게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지식은 기도와 명상에 의하여 얻어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때에 주님 안에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의 마음 속에서 은밀하게 이야기 하시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세상의 지식은 교수에 의하여 얻어지며 영적인 지식은 하나님의 빛에 비치어 직감에 의하여 주어진다.
영적 지식과 영혼의 힘과 내적감각 - 그것은 죄때문에 감각을 잃고 죽어 버렸다- 그것은 다시 각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곳에 한 소경이 있었다.
그는 점자성경을 읽으려고 하였지만 심한 추위때문에 손가락 끝이 얼어서 감각을 잃고 한자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 옆에 가서 손을 쪼였다.
얼마 후 그의 손은 녹아져서 점자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처럼 기도와 명상에 의하여 의의 태양(말 4:2)의 빛과 성령의 불이 마음 속에 역사하여 힘을 주고 또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이같이 하여 우리는 자신과 하나님을 알고 또 그의 생명을 주시는 임재를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중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에 성령은 이 세상의 말로써 한마리도 말하지 않아도 직접으로 영적생명의 숨은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또 계시하신다. 우리가 영에 의하여 거듭날 때에 영적인 말이 우리의 모국어가 되고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말을 자연히 배우는 것처럼 주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말은 그저 외측의 뜻을 전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 어린아이처럼- 말없이도 하나님이 나타내시려는 뜻을 이해한다. 예를 들면 만약 우리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 어린아이에게 범어의 이스와르란 것은 GOD(신)을 의미한다고 가르쳤다고 하자. 그러나 신이란 말의 뜻을 알리려 하 ㄹ때 무슨 말로 하면 좋겠는가? 그것은 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어린이의 마음 속에 들어온 것으로써 이해하게 된다.
해는 그 자체의 빛에 의하여 볼 수 있다.
마치 그처럼 의의 태양도 오직 그 자신의 빛에 의하여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적인 시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소경은 보아도 보지 못하여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마13:13).
그리스도가 하나님임을 아는 것은 참된 뜻에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수성(獸性)만으로는 아무리 완전하다 해도 이런 사실을 알기에는 불충분하다. 죄가 깊고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 또 새로운 피조물(골 3:10)이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를 알고, 또 그 모습을 닮은 내 자신을 아는 근본 요소가 된다. 죄때문에 인간의 모습은 손상되었으므로 다시 지음을 받아야 비로소 그의 주되는 조물주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죄에 의하여 참된 품위와 인간다움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죽었다.
그래서 공기처럼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게 되었으며 죽은 사람은 주위에 충만한 공기를 느끼지 못하고 호휴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된 것이다.
그처럼 죄로 죽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기도의 호유도 기쁘게 여기지 않으며 신령과 진리로 그리스도를 예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창 2:7).
그리하여 생령이 되었다.
그러나 죄에 의하여 생령은 죽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다시 새로운 생명을 사람의 코에 불어 넣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영원의 생명이다(요 20:22).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참된 회개를 하고 전향하므로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중의 위험이 있다.
즉,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에 넘치는 축복을 빼앗기든가, 또는 하나님 앞에 있는 그 사실과 평화를 마치 자기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게 된다.
실제 하나님을 알고 참된 생명을 얻는데는 인간이 제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눅 9:23-24).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다 하기 위하여 자기의 소원과 의지를 버리는 자는 충만하게 채워지며 그의 영혼은 조물주 안에서 요구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반하여 제 자신을 만족케 하려는 자는 욕망하는 것과 수용성을 함께 잃게 된다.
바꿔서 말하면,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제 자신과 모든 욕망을 버리는 자는 하나님을 찾고 요구하는 모든 것도 찾게 되지만 자기를 버리지 않는 자는 스스로 영적 자살을 하는 자이다.
만약,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불순종과 어리석음 때문에 그 모습을 손상케 하였다면 탕자와 같이 제 자신을 상하게 한 것이 된다. 그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때에는 그가 남을 해치고 있는데 대하여 무감각하여 조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2-26).
그가 살아 있고 각성하여 있다면 자신과 남을 해치는 대신에 자기와 남의 영적 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그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괴로움이나 십자가를 면할 수 없다.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데 필요하다(시 23:4).
그러나 참된 기독신자는 죽음의 십자가를 진다 할지라도 살아 있으며 박해 속에 있어도 겨울철의 나무가 죽은것처럼 보여도 새 봄이 되면 새싹이 나듯이 진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고후 4:8-10, 6:4-10).
슬픔과 괴로움으로 그 생활은 하나님 속에 숨겨져 있어도 마치 멕시코만의 난류가 대양을 가로지르는 조류가 되어 따뜻한 물결이 먼 북방의 나라들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듯이 하나님의 사랑의 조류와 성령의 물결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떠바쳐 기쁨과 만족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자신을 알게 되면 그 때 비로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깨닫게 되므로 결코 오만하거나 잘난척 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남보다 훨씬 뛰어나 있다고 해도 그렇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보다는 훨씬 뛰어나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데 있어서 기계 역할을 하는 두뇌를 통하여 스스로 일할 수가 있다.
그처럼 중생한 사람이 주의 뜻을 따라 남에게 봉사하려 할 때 성령은 그 사람들의 생명을 통하여 역사하며 또 그 자신을 나타내신다.
의의 태양도 또한 그같은 인격을 통하여 계시하신다.
그러나 달이 태양으로부터 빌려온 빛의 반사로 어둠을 비추는 것이지만 어떤 때에는 태양과 지구와의 사이에 있어 어둠을 끼치는 것처럼 주의 종들도 이세상 사람들과의 사이에 있어 그들에게 어두움을 주고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노력하여 열심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주님은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마 6:23)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눈은 몸의 둥불이어서 비록 작지만 크고 작은 것, 멀고 가까운 것도 볼 수 있다.
만약 눈 속의 작은 동자가 백내장으로 볼 수 없게 되면 어둠은 더해지고 사방의 아무 것도 못보게 된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 우리 안에서 어둡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마 5:16).
언제나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추고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숭배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진주를 캐는 잠수부가 바다속에 잠입하여 잠시동안 숨을 멈추고 있지만 맑은 공기와 연결되어 있는 관을 통하여 물위의 공기를 호흡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이 세상 가운데 있어도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이므로 이 세상의 공기를 마셔서는 안된다.
우리는 기도의 관을 통하여 성령을 호흡함으로써 영원히 살 수 있다.
이처럼 하여 우리는 자신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알 때에 그 요구도 또한 알며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최선을 다 할 때 그 가운데서 우리의 모든 요구는 충분히 채워지며 영원히 만족하게 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또 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보았고 사랑의 수육자 그리스도는 아무에게도 그를 나타내신다(요 17:25, 마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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