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2 장 십자가를 통한 구원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 하늘에 있어서도 그는 나의 모든 것이다.
이전에 사막을 여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피곤하고 갈증이 나서 언덕 위에 서서 물 있는 곳을 살펴 보았는데 저 편 먼 곳에 호수가 있는 것을 보고 무한히 기뻐하였다.
이제 목을 축일 수 잇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희망을 걸고 그 쪽을 향하여 장시간 걸어 갔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 갔어도 그 곳에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후에야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알았다. 태양 빛의 반사에 의하여 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실제 아무 것도 없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생명의 물을 찾아 세계를 방황하였다.
이 세상의 일들을 - 부,지위,명예,호사 - 마치 그것이 나의 영혼의 갈증을 고치는 샘물인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의 갈증을 고치는 한 방울의 물도 찾지 못하였다. 나는 갈증으로 죽으려 하였다. 그러한 때에 나의 영안이 열려 생명수가 샘을 이루어 그의 찔린 옆구리로부터 흘러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물을 충족하게 마셨으므로 이제 목마르지 않는 몸이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항상 생명수를 마시며 이 세상의 사막을 지날 때에도 결코 목마르지 않는 자가 되었으며 나의 마음은 찬미로 충만해 있다.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평화이며 나는 어떤 역경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해 속에서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그 누구도 내가 주님 안에서 찾은 기쁨을 뺏아갈 수는 없다.
집에 있을 때에도 주님은 함께 있고 옥중에 있어도 거기에 함께 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옥은 하늘로 변하며 십자가는 은혜의 원천이 된다.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만약 하늘나라에 가서 이미 십자가를 질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주님에게 애원하여 선교사가 되겠으며 지옥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거기에 가서 주님의 십자가를 질 기회를 얻고자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다면 지옥도 하늘나라로 변할 것이다.
벙어리는 과자의 단 맛을 이야기할 수 없듯이 구원을 받은 자는 그 입으로 주님이 계신 존귀한 사실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오직 하늘의 말만이 이 천적평화를 표현할 수 있다. 비록 나는 이 세상의 위험, 유혹, 죄, 슬픔 속에 있었지만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바닷물은 짜고 고기는 그 속에서 살지만 바다 고기의 살맛이 짜지 않은 것은 생명이 잇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면 세상속에 있을지라도 세상의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어서도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이제 나는 재산이나 지위, 목숨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나의 마음을 하늘나라로 변하게 하신 주님만을 필요로 한다. 그의 무한한 사랑은 다른 모든 자의 사랑을 쫓아 내었다.
많은 그리스도신자가 그의 존귀한 생명을 주는 현재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이 두뇌와 성서 속에서만 살아 있고 그 마음 속에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그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바침으로서 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왕의 왕인 주님의 보좌이다. 하늘의 주부(主府)는 주님의 통치하시는 마음이다.
놀라운 사건
카이라시(히말라야 산중의 한 고산)의 산간을 넘어 한 지역에 이르렀을 때에 마을 사람으로부터 이리로 가면 촌락으로 가는 가장 바른 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크리스챤인 나에게 적의를 가지고 위험이 많은 숲속으로 보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그 길을 따라 갔다.
가도 가도 마을은 나타나지 않고 해가 지게 되었는데 나는 한 강변에 이르게 되었다. 사방에서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강을 건너고 싶었지만 그것도 할 수가 없어 드디어는 실망한 채 거기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모든 조건은 나쁘기만 했으며 나는 이제 내 목숨이 다할 때가 가까와 오는구나 하고 느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넘쳐 흘렀다.
그 때에 눈을 들어 보니 강 건너 편에서 한 사람이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소리쳐 말하였다.
"걱정 마시오, 나는 당신을 구하러 가겠소."
나는 그가 일어나 나에게로 걸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급류속으로 뛰어 들어 이 쪽으로 헤엄쳐 온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는 "내 어깨를 붙잡으시오. 그리고 겁내지 마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는 나를 부축하여 저쪽 강변으로 옮겨 놓았다.
놀랍게도 나는 내 홀몸으로도 건널 수 없는 급류를 그는 나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아무런 괴로움 없이 강을 건넜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는 이 고장에 살기 때문에 강을 건너는데 익숙해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그에게 복음을 전도하여 그에게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하겠다."
그런데 내가 뒤돌아 보니 벌써 그 사람도 없고 모닥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놀라는 한편 두려움을 가졌다.
정녕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단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주님은 변치 않으시지만 우리의 신앙이 변하는 것이다.
구원은 용서며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구원은 단순히 죄의 용서일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죄가 용서된 후에도 우리는 자신의 죄에 의하여 죽는 일이 얼마던지 있을 수 있다.
많은 죄인들이 그 죄가 용서된 후에 그들의 죄가운데서 죽어 간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다.
히말라야산 지방에 살고 있던 한 사람이 오랜 동안의 병으로 정신이상이 되었는데 어떤 날 한 친척이 문병을 와서 그 옆에 앉아 있으니 정신이상된 사람이 문득 예리한 칼로 그 사람의 목을 찔러 죽였다.
정신이상자는 붙잡히어 교수형의 언도를 받았다.
그의 가까운 친척 한 사람이 변호를 하는 자리에서 그가 오랜동안 병으로 시달리다가 미치게 되어 한 짓이니 용서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다.
왕은 동정심 많은 사람이 어서 동정과 이해로 이를 용서하여 그를 놓아 줄 것을 명령하였다.
그가 친척되는 사람을 죽인 것은 20일이었고 교수형 집행일로 선고된 날은 22일이었다.
그리고 용서를 받고 놓여 나온 날이 21일이었는데 그는 22일에 죽고 말았다.
그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죽은 것이다.
그래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사람의 구원은 병의 고침을 받는 일이었다. 그가 살인죄를 범한 것은 그의 병의 결과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병을 고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범한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죄로부터 고침을 받는다면 우리는 구하여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직도 죄를 범하고 있다면 우리는 죄때문에 죽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잘 못 알고 있다.
그들은 범한 죄가 사하여졌으므로 구원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에 그들의 죄악의 성질이 고쳐지지 않았다면 구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고통과 번뇌의 숨은 뜻
세상 가운데 있는 고통과 번뇌의 숨은 뜻은 큰 문제이다.
그것은 죄의 결과라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 하나님의 성전에 부르시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영적 생활과 진보와의 사이에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만일에 고통과 번뇌가 하나님의 피조물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 못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곧 이 땅 위에서 고통을 없애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지금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유익하고 또 우리에게 있어서 단련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알의 종자가 땅에 뿌려지는 것을 보라. 그것이 성장하여 햇볕과 열을 받아 아름답게 되기 위하여 대기 속에서 자라기 전에 땅 속의 어두운 태내에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후에 정해진 시기에 싹을 나게 하고 또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런 것이다.
회개가 가장 필요하다
회개는 하늘나라에 들어 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필요하다(막 3:2).
하늘나라는 미래의 나라는 아니며 이 지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작은 하나의 죄라도, 또 나쁜 한가지 생각이라도 우리의 희망을 멸하며, 하늘나라 밖에 있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은 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마치 병을 일으키는 세균처럼...
우리는 육안으로 세균을 볼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이 우리도 볼 수 없는 죄 때문에 화를 입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경험하는 것은 죄가운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증거이다.
한 교수가 어떤 때 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디에 당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나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마치 어떤 것을 먹고서 단맛을 아는 것처럼 나는 내가 구원되어 있는 것을 평화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어떤 사람은 눈이나 얼음에 상하는 것 (동상을 일으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보온의 방법은 취하지 않고서 벗은 발로 얼음 위를 걸어서 발의 피부를 손상시키고 만다.
그와 같이 사람들은 죄가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결합을 파괴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러진 뼈가 접골되기에 앞서 고통으로부터 구원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죄로 인하여 일어난 고통이 제거되기 전에 우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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