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 썬다싱

[스크랩]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활 - 제 3장 믿는다 하면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

김 열 2011. 11. 6. 16:47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활

 

제3장 믿는다 하면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   

 

도, 진리, 생명

 

전 장(前 章)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고 알려진 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에 있어서는 참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을 보았다.

 

이 장에서는 기독교 신자로 보이나 실제에 있어서 기독교 신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을 보려고 한다.

 

그리스도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걷는 것으로 하여 길을 알며 전심으로 구함으로써 진리를 알고 살고 있는 것으로써 생명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길을 걷고 진리를 알며 그 생명에 살기를 원치 않는 이른바 이름뿐인 신자들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진리나 지식, 또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생명의 경험도 가지지 못하며 참된 길을 벗어나 자기 길을 취하여 필경은 멸망하고 만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은 불신자일 뿐만 아니라 많은 미신자(未信者)보다 더 나쁘다.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치 않았다.

 

기독교국으로 알려진 많은 서양 나라들은 교육에 있어서나 사회적 정치적 자유에 있어서 큰 발전을 가져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어떤 나라도 국민 모두가 크리스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국민 가운데서 참되고 열성있는 크리스챤을 몇 사람 정도 발견할 수 있다. 또 단체의 모든 부분이 전부 기독교 신자로 되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서는 그들의 진보된 원인이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받은 축복인데 오늘에 와서는 종종 주님을 배반하고 그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다.

 

그들 중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또 더럽히며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하여 그들은 "나의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고 한 주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하였다.

 

주님은 자기 땅에 오셔서 타락하고 죄로 더럽혀진 그들을 건져 내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케 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않았다" (요 1:11)

 

 

한 학생

 

내가 "켄부릿지"에서 한 집회를 가진 뒤 장래가 촉망되는 인도 학생 한명이 찾아 왔다. 그는 인도에 있을 때 어떤 "밋숀스쿨"의 학생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자기는 학교에 있을 때 마음이 그리스도에게로 끌려 신자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에게 가서 세례를 받겠다고 말했으나 정부에서 허용한 연령이 되지 못하여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더욱 깊은 결심으로 세례 받을 수 있는 연령까지 참았다 받기로 마음속에 다짐하였다. 그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다시 영국에 유학하게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에 오려고 준비하는 동안은 아주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선량한 선교사가 온 기독교국에서 교육과 영적인 축복을 받으려고 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땅에 상륙한 후 얼마동안 살면서 사람들의 하는 일과 생활양상을 보았을 때 나는 아주 환멸과 비애를 느꼈습니다.

 

휴일을 맞아 불란서, 스위스, 독일 그 밖의 구라파 여러나라들을 방문해 보고 그 곳 주민이 기독교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나쁜 불신심(不信心)의 도배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사람은 인도교 아니면 회교나 또는 다른 종교를 믿지만 구라파에 있어서는 그들이 기독교도가 아니면 세속적인 일 외에 아무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단지 보통 사람 뿐만이 아니라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또한 그러합니다. 나의 교수중의 어떤 자들까지도 특별히 종굘ㄹ 믿지 않으며 모든 것을 동등하게 본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스스로 기독교도라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기독교의 뿌리에 도끼질 하려고 하는 자도 만났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저(根底)인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처음 보았을 때 아주 고민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그 사랑을 벌써부터 몰랐더라면 그들과 함께 불경건에 빠지고 신앙도 잃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 친구의 이야기지만 그는 믿음에 대한 깊은 경험은 없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구주로서의 신앙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지금 기독교는 단순한 구경거리며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경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인도에 돌아간다면 선교사를 향해 제나라로 돌아가 저들의 동포를 가르치는 것이 낫다고 말할 것이며 그들이 우리보다 더 이것을 요구한다고 외칠 것"이라고 말 한 다음

 

그는 결론으로 "그러기때문에 나는 결코 사랑이 없는 이들의 교회의 회원이 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될 수 있는 한 나의 주님의 뒤를 따르며 또 봉사하려고 생각합니다"하고 말하였다.

 

 

실  재 (實 在)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대부분 내 생각과 일치합니다. 나의 경험도 다소 비슷합니다. 스스로 기독교도라 말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무런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소.

 

나는 그들을 그리스도 없는 크리스챤이라 부르오. 만약 교회 신자로서의 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없는 교회주의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기독교도의 종교는 정말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알맹이 없는 껍질이며 영혼없는 육체입니다.

 

단순한 문명과 도덕적 생활은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차고 생명이 없는 조각품과 같은 것이요, 이것에 의하여 인과(因果)를 전도(轉倒)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살아 계신 주님의 잘못은 아니오. 그것은 그들이 주님에 대해서 그들의 생애를 변화하여 그 마음을 낙원으로 만드는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기 전에 새로운 피조물로 고쳐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죄에 더럽혀지고 타락한 낡은 성질은 그를 알 능력을 갖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그를 알기 전에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성질이 우리의 것으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골 1:15, 3:10). 이렇게 하여서만이 우리는 그를 참된 하나님으로 알 수 있다 (요 5:20).

 

 

생기와 영(靈)

 

"인간은 태초의 상태로부터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기처럼 그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실재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공기 속에 누워 있으면서 호흡도 하지 않고 또 감각도 없듯이 죄로 죽은 사람도 또한 사위에 있는 하나님의 실재를 감각하지 못하고 기도의 호흡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으셨을 때 그는 생령이 되었다 (창 2:7). 그러나 죄로 인하여 생명은 죽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그에게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으셔야 할 필요가 생겼다 (요 20:22).

 

 

세상의 빛

 

"해는 그 자신의 빛에 의하여서만 볼 수 있으며 세상의 빛도 또한 그 스스로의 빛에 의하여서만 알려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기에 앞서 영적인 시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장님과 그들 영의 눈먼 자는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꼭 부엉이와 박쥐가 눈은 있어도 태양으로부터의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과 영적인 지식은 이 세상의 지식과 다르다. 단순한 이 세상의 주의나 학(學)은 때때로 어리석은 이야기여서 내적인 소리를 침묵케 하고 거기에 기독교적인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대신에 그릇되게 이끈다.

 

참된 영적 지식은 오직 기도와 명상을 통하여서만 온다. 하나님은 마음의 은밀한 골방에서만 사람과 이야기 하시며 우리는 거기서 조용하고 잔잔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런 때에 신생을 체험하지 못한 이 세생의 지식자에게 숨기시는 것을 그 자녀들에게 계시하신다. 거듭나는 것으로만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경험에 들어간다. 예수는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시며 그 가운데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신다(마 11:26-27, 요 14:21-23).

 

우리는 이 세상 지식은 귀납법(歸拉法)에 의하여 얻을 수 있고 영적 지식은 하나님의 빛을 받은 직관에 의하여서만 얻는다"

 

 

미국의 한 교수

 

보스톤에 교양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 없는 신자였는데

나에게

"만약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무엇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것입니까? 그는 자신을 나타내어 사람들을 잘못과 멸망에서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질문 하였다.

 

나는 그에게 "그는 구주로 한 번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전심으로 구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타나십니다. 그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또 소멸하시는 불입니다(히 92:29). 그러므로 그는 모든 불결한 것과 마음에 위반되는 것을 불태워 없애는 것입니다.

 

해는 그 빛과 열로 수목의 성장을 돕지만 만약 나무에 병이나 결함이 있으면 같은 빛과 열로 돕는 대신에 말라 죽게 합니다. 이것은 태양의 잘못이 아니고 나무 자체의 상태에 따른 것입니다.

 

그처럼 사랑의 하나님이요 생명의 빛이 되는 주님도 인간의 영적 발달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인간 자신의 성질에 따라 생명을 주는 빛을 변하게 하여 자신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과 같게 만드신 인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자는 인간 자신으로써 불순종과 어리석음 때문에 저를 손상케 하고 저의 적이 되게 합니다.

 

이같이 제 자신을 제하고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전 우주 속에서 저를 손상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남을 손상하는 것

 

인간이 하나님 없이 생활한다는 것은 벌써 그의 영적 지각과 감각이 둔해지도록 저 자신을 손상시켰다는 말이요, 이 때부터 남을 손상시키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의 내적 지각이 이 상태에 빠져 죽었으므로 친한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의 지각을 알 수 있도록 영적으로 각성해 있다면 남을 손상하는 대신에 그들의 선을 구하고 그의 생애에 주어진 하나님의 목적을 다 할 것이다.

 

 

부    자

 

나는 구라파에서 많은 재산을 갖고 철학에도 잘 통한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의 재산이나 학문도 그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오게 하지 못하였다.

 

내가 그를 만나기 얼마 전에 그는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그가 여생을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았다.

 

그가 찾고자 하는 곳은 너무 덥지 않고 춥지도 않으며 무서운 병과 독충이 없고 주민의 사회적, 도덕적 상태가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그는 "이러한 곳에서 나의 여생을 평화롭게 지내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이 그리스도를 가지지 못한 크리스챤은 노아의 비둘기처럼 땅 위에서 쉴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였을 때 불쾌한 마음으로 스위스에 돌아 왔다.

 

그는 나에게

"내가 세계를 돌아 다닌 것은 생활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는데 당신이 구라파에 온 목적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의 내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만한 것이나 장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요구는 육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과 그 욕구를 만드신 자에게서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당신과는 전혀 다릅니다. 내 영혼에 평화를 채워 주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기독교국으로 불리우는 나라들을 찾아 온 제 2의 목적은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가 또는 그리스도와 떨어져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니는동안 나는 그리스도를 맞아들인 사람들은 비록 곤란과 고뇌가 있어도 그 생활은 행복했으며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비록 재산과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평화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참된 크리스챤은 오막살이 집에 살아도 궁전에 있는것처럼 행복하지만 이름분인 크리스챤은 왕궁에 산다 할지라도 가장 가난한 참된 크리스챤이 적빈 속에서 가지는 것만큼의 행복과 평화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 세계의 구주

 

나는 다시 계속하여 말하였다.

"이같은 일은 비단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구주라는 것이 실제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유일의 태양이 동양도 서양도 같이 비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비치는 참된 빛도 또한 하나입니다."

 

"동양인도 서양인도 우주적 어머니의 자식이며, 적은 표면적 상이를 제하고는 인성과 그 요구는 전 세계를 통해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이 잘 증거하듯이 모든 사람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는 것은 오직 하나로써 사람이 주님의 뜻에 따라 생활할 때에만 그것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유물주의 (唯物主義)

 

그 후 그는 또 물었다.

"동양 사람들은 종종 우리를 물질주의라고 말하는데 물질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물질주의나 다른 어떤 것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잘 못 쓰기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만약, 그 물건이 알맞는 적당한 장소를 차지할 수 있다면 모든 게 바르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영적 요구를 만족시키려고 우리의 마음 소겡 속된 것이 들어올 장소를 내어 준다면 그 때는 하나님의 있을 곳을 빼앗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영적 인식력을 시들게 하고 영혼을 생명 없는 물질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물질주의는 다소의 차는 있을망정 동양에도 서양에도 존재합니다. 물질의 특별한 용도는 우리의 영혼의 집을 보존하는데 필요한만큼 적당하게 쓰이는데 있습니다.

 

만약 그 용법에 있어서 적당한 범위를 넘을 때는 영혼을 제 2의 위치에 내버리고 물질을 예배하는 위치로 올리는 것이 되며, 그 최종의 결과는 영혼의 멸망을 가져옵니다."

 

 

한 왕자

 

얼마 전, 인도의 한 왕자가 만나자고 하여 나를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왕궁에 2, 3일 체재하였다.

 

그는 이미 서양 여러 나라를 여행하여 서방의 물질주의와 그 생활양식에 어느 정도 감화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영적인 일에 등한할 정도의 깊은 영향은 받지 않았다.

 

하룻 밤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하였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축복을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나는 지금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못하는 연약함도 자백합니다.

 

만약 내가 고백한다면 단지 나의 국민뿐만 아니라 기독자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정부도 또 나를 왕위로부터 물러나게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영국이라고만 부르지 기독교의 정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일처럼 종교적인 일에 대해서는 뜻을 기울이지 않기때문입니다.

 

물론 나의 권리를 버리고라도 종교적 의무에 대해서 엄수하는 일을 보다 큰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배하시는 왕이 나때문에 하늘의 왕위를 버리신 것처럼 그를 위해서는 나의 왕위를 버릴 각오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독교국이라고 불리우는 나라들을 방문하지 않았을 때는 지금보다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쪽 나라들에 갔을 때에 자극을 받았으며, 또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결코 그 곳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그 곳에 간 참 동기는 옛 모교회에 가서 순수한 젖을 마시며 튼튼히 될 양식을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의 영육에도 국가적으로도 충분히 의무를 다 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젖을 얻는 대신에 술이 주어졌으며 빵 대신에 돌이 주어져 전보다도 악화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밖의 일도 있었지만 지금 여기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기독교가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참되게 그를 따르는 일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지 일반 사람들만 아니라 종교적 또는 정치적인 지도자에 있어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문제로부터 떠납시다.

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사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이 한가지 일도 또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가 참된 것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타락하여 있는가를 보고 각성하도록 재촉하는 하나의 도전이며 경고이다. 주님이 요한묵시록 2장 5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네게 이맣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왕자가 지적한 것처럼 등잔 밑이 어둡다 하지만 만약 불순종과 무관심으로 등잔이 그 장소에서 옮겨지게 된다면 그 어두움은 얼마나 클 것이겠는가?

 

 

한밤중의 태양

 

되풀이 되는 경고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바 없이 무관심에 잠겨있어 어두움 속을 걷고 있다.

 

어느 해 여름 북구라파에 간 일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한밤중인데도 태양이 지지 않았다.

스웨덴의 한 친구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는 당신을 한밤중의 태양의 나라에서 보게 되는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하고 씌여 있었다.

 

나는 답장에서 "한밤중의 태양의 나라라는 것은 정말입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또 대낮의 밤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에는 생명을 주는 의의 태양빛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두움 속에서 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하고 써 보냈다.

 

 

벙 어 리

 

많은 사람들은 들짐승처럼 평생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혀를 가지고 있으나 말 할 힘이 없어 마치 짐승이 제 자신이나 다른 이웃에 소식(메시지)을 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벙어리다. 짐승은 실제 혀를 가졌으나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였다. 그것은 다만 소리와 행동만으로 나타내는 야수적인 감각 이상으로 말해야 할 아무런 필요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 생명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짐승을 닮았지만,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그보다 더 나쁘다. 소는 주인을 알아 보며, 당나귀는 주인집 마굿간을 안다.

 

그러나 조화(造花)의 관(冠)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그것을 지은 주인을 모른다(사 1:3). 그의 혀는 거짓을 말하는 데는 빠르고 참됨을 이야기 하는데는 느리다. 그것은 그들의 주되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렘 9:3).

 

 

십자가를 진 자

 

우리는 종종 영적 진리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자제력이 없이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언제나 참된 양심의 소리를 지워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거절한다(눅 16:8, 고전 2:14).

 

많은 사람들이 그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지만 그러나 모두가 좋아서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어서 짊어지고 있는 것이며 구레네의 시몬이 짊어진 것에 비하여 별로 나은 것이 없다(막 15:21). 이런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를 따르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력(磁力)과 십자가

 

주님은 "내가 이 땅에서 승천할 때에는 모든 사람을 나 있는 곳에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십자가 위에 나타난 무한한 사랑이 자석과 같이 그들 속에 끌리는 요소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을 그것에 이끌어 들인다. 주님의 요구는 그가 있는 곳에 그를 섬기는 자도 있게 하는 것이다(요 12:26).

그러나 자석은 철을 발아 들이지만 금이나 은은 빨아 들이지 않는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또한 중심으로 회개하여 주님을 구하는 자를 끌어 들이지만 저 자신의 선을 믿고 그리스도 없이 사는 것을 만족으로 여기는 자를 끌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옆에 걸린 두 사람중 한 사람은 회개하고 그의 요구를 주님을 향해 하였을 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죄가운데서 죽은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없이 죽는 모든 사람들의 종말인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모든 예언자와 동서남북으로부터 모여 온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을 보지만 그리스도 없는 크리스챤은 밖에 쫓겨 나갈 것이다 (눅 13:28-29).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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