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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활 - 제 4장 그리스도와 함께 한 신자 <2-1>

김 열 2011. 11. 6. 16:48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활

 

제4장 그리스도와 함께 한 신자 <2-1>

 

참된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살며 그리스도는 그들 안에 사신다. 또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그들도 또한 죽음으로 죽음을 멸하신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다(요 14:19).

 

그러나 이 새로운 생활에 있어서 그들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산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 이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지는 자이므로 그의 친구와의 교제를 구하며 서로의 행복을 기쁨으로 여기는 생활로써 피차 다행으로 여긴다. 보통 세상의 행복은 이기심 때문에 해를 입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님이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참된 사랑이 있을 때에는 남의 행복을 위하여 사랑이 스스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또 남에게 구할 때에는 나도 스스로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구하는 마음이나 주려는 마음은 서로 상통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같은 마음을 가진 주님의 자녀들은 이같이 하여 상호의 행복을 지속하는 것이다.

 

 

사리, 사욕

 

이기주의가 모든 악과 영혼 불안의 뿌리다.

이기주의의 사람은 남이 베푼 몇 천의 친절은 눈여겨 보지 않지만 제 스스로가 행한 한가지 친절은 결코 잊지 않는다. 또 저에게 있는 몇 천의 결점은 잊고 남의 적은 실패를 태산처럼 크게 들추어 말한다. 이러므로 우리의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눅 9:23).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그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쫓아 행하는데 따라 또 자기자신의 일도 잘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자기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제가 취한 길이 최선인 것으로 생각한 사람도 하나님이 가리켜 주신 길 외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한 번, 하나님의 길에 대항하여 활동하는 것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다시 복종하였을 때에 다시 하나님과의 조화를 얻게 되었으며 나의 평화도 회복되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뜻을 항복시켰을 때 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일하면서 나의 평화를 찾았다.

 

이에 반하여 만약 나의 의지대로 하는 것을 주장한다면 나의 뜻을 만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만족시켜야 할 성질, 그 것까지도 멸망시켜 버린다. 그것은 그처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자기와 하나님과 다른 모든 것을 얻으며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뜻에 거역시킴으로써 영혼의 자살을 행하는 자이다.

 

 

재산에 신뢰하는 것

 

하늘의 새를 보라.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에 저축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새끼를 위하여 둥지를 만든다.

이에 비하여 인간은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를 한다.

그러나 자신과 자식을 위하여 다음 세상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거두어 들인 이 세상의 재산과 더불어 멸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그 재산에 머물러 있고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위한 선한 일에 쓰지 않았으므로 재산속에서 실패에 긏ㄴ 것이다(눅 16:9, 18:22).

 

금.은과 이 세상의 재물은 그 자체로는 결코 우리들의 굶주림을 고치고 목마름을 그치게 할 수 없다. - 이것들은 단지 우리가 그것을 재료로 하여 그들의 고통을 고치는 매개물로써 쓰여질 뿐이다. 그러나 재물도 올바르게 쓰여질 때에는 그것으로 친구를 <영원의 거주>를 얻게 하는 수단으로 쓰여지게 하는 것이다.

 

 

숨겨진 보석

 

금.은과 보석 따위도 땅 속에 파묻혀 있는 동안에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

그처럼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힘도, 기량도, 재능도, 그것을 활용할 때까지는 가치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크리스챤의 생명 속에 들어갈 때에는 그 숨겨진 부를 끌어내어 세상에서 그의 목적을 다 하기 위하여 보람있게 쓰신다.

 

그리스도는 어부 가운데서 사람을 낚는 자를 끌어 냈으며 그로 하여금 인류 구제의 영원한 목적을 진행케 하셨다.

광산 속에 있는 금은 순수하지 못하며 새로 발견된 금강석은 정형(正形)을 이루고 있지 않으나 제련으로 순화되며 깎여서 아름답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불은 크리스챤의 생명을 더럽혀진 것으로부터 맑게 하며 십자가는 그들을 자르고 또 모양을 정돈하여 아름답게 응결시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반사하여 찬란한 빛을 발휘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한 실업가

 

미국의 한 실업가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크리스챤인데 최선을 다하여도 하나님이 나를 이 모양대로 두기 때문에 완전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나는 대답하기를 "우리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것 같이 온전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온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구원도 우리들이 현재 온전하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 그 토대에 서서 드디어 온전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죽음의 육체'에 유폐되어 있다고 해서 실망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의 육체에는 매일 많은 먼지가 낍니다. 그러나 매일 목욕을 하면 그것이 우리를 손상치 않습니다. 그처럼 우리들에게 부족함과 약점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생명의 생명이며 영의 영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살고 계셔서 나날의 기도로 우리들의 생활을 깨끗이 지켜 주시면 그것은 아무런 상해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목욕을 하지 않는다면 신체의 훼손을 막을 수 없으며 영이 한 번 육체를 떠나면 지체없이 파괴되고 맙니다. 그처럼 만약 우리들이 불순종한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들을 떠나 버린다면 부패와 영적인 죽음이 반드시 그 뒤를 따라 오는 것입니다(롬 8:9-11).

 

 

이 세상의 특별한 용도

 

나는 이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어떤 것이든지 감사를 가지고 그 주어진 특별한 용도에 따라 사용할 때면 악이 된다든가 해가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위험은 우리들이 창조자에게 엎드려 바쳐야 할 위치를, 피조물에 돌리는데 있습니다. 우리들은 만든 주인에게 조물주의 위치를, 그리고 만들어진 것에는 피조물의 위치를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물 속에 빠져서는 안된다.

만약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 끝에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 물 속에 빠져 버리면 익사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물질에 대하여 우리의 육체를 지탱할 만큼 적당한 범위에서 써야 하며 몸을 훼손하지 않도록 지나치지 않게 사용하여야 한다.

즉, 우리들 생활의 힘이며 호흡인 기도를 꺼지지 않도록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완전

 

나는 계속하여 "하나님이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있게 하는 것은 세상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트'를 놓기에 합당한 장소는 물 위입니다. 그러나 물이 '보트' 속에 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같은 길을 통해서만이 나와 우리와 함께 있는 자들을 안전하게 천국의 목적지까지 도달케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또 나는 이어 말하기를 "그러므로 당신은 예배나 기도를 드릴 시간이 없을만큼 자기 직업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의 마음이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으로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것에 지지 말고 오히려 승리를 얻기 위해 그것들을 초월해서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들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따라서 우리들의 사상이나 행위도 불완전한 것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 해도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미 완전을 위한 싹을 가지고 있으며 장차의 완전은 이 위에 근거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또 자녀로서의 모습으로까지 우리를 끌어 올리신 하나님은 그 자신이 정하신 때에 이르러 우리를 완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기도와 일

 

그 후 한 사람의 목사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우리는 보다 많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또는 보다 많이 일을 해야 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시간을 이 두가지 일에 나누어 써야 할 것입니까?"

 

나는 대답하기를 "두 가지 일 모두가 다 필요합니다. 활동이 없는 기도는 기도 없는 활동과 마찬가지로 나쁩니다. 병아리를 까는 암탉이 그 알을 집어간 뒤에도 그 본능을 따라 어두운 구석에 가서 품고 앉는 것처럼 이 분주한 세상에서 몸을 빼어 시간의 전부를 기도로 소비하는 것도 그 암탉처럼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나타남

 

그 목사는 또 나에게 질문하였다.

"왜 그리스도는 성 바울에게 자기를 나타내신것처럼 오늘날에는 계시하시지 않을까요?"

 

나는 대답하였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때때로 그 자신을 그들의 필요에 응하여 나타내십니다. 인간의 요구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상태와 환경은 현저히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상태와 요구에 따라 모든 진리의 추구자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요 2:25).

 

"하늘에 있어서나 땅에 있어서나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로써 그 자신의 힘과 지혜와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길에 있어서 침묵한 자연의 혀(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힘은 그 피조물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또 현대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항상 그의 성전에 사는 사람들과 그 자신이 그 속에 사시는 사람들을 써서 잃어버린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으 영원과 요구의 밑바닥에서 '이것을 해라, 이것을 하지 말아라' 하는 소리가 납니다. 이 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가깝게 사는 사람은 이 소리를 용이하게 들을 수 있고 이와 반대되는 사람은 듣기 힘듭니다. 만약 우리가 그 소릴르 듣고 따른다면 하나님과 그의 뜻은 우리 가운데 밝게 나타납니다"

 

"인간의 영혼이란 것은 아주 미묘한 것이어서 두뇌처럼 다른 미묘한 기계를 통해서만이 그 자신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뇌가 사상, 언어 그리고 행동의 중개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그릇으로 세련되고 성화된 생명을 쓰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도 또한 마찬가지로 그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는데 그의 종의 생애를 통해서 빛내시는 것입니다."

 

 

일  식  (日  蝕)

 

"그리스도의 종은 달처럼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세상에 비춰줍니다. 달은 때로 태양과 세상과의 사이에 와서 일식의 원인이 되는데 그처럼 하나님의 종이면서 그에 마땅치 않은 생활을 하는 자는 때로 하나님과 세상과의 사이에서 성안(聖顔)의 빛을 가리우는 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배와 활동과의 길

 

시카고에서 다른 교직자가 나에게 물었다.

"예배와 활동에 대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에게 대답하였다.

"어떤 방법을 쓰거나 그 중심은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일입니다.

동방에서는 사람들이 예배장소에 가면 신발을 벗으며, 서방에서는 모자를 벗습니다. 그러나 영과 진리는 그들의 신발이나 모자, 또 발이나 머리에 의한 것이 아니며 그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활동에 대한 방법은 인간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입니다.

 

교파는 그 가운데 좋지 못한 사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시간은 다른 교파의 결점을 공격하는데 낭비되며 사실중의 사실인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버리고 돌보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요건이며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 증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거짓증거나 악마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증거를 하는 자는 사람들을 유익케 하기 보다는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눅 4:34-35, 사 19:15-16).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알고 그리스도는 모르는 사람도 또한 모든 사람들의 말과 천사의 말로 설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은 개인의 경험으로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자에게만 주어진 사명입니다."

 

-  계  속  -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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