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생각

믿는 자가 심판에 이르지 않는 이유

김 열 2011. 12. 26. 07:19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 걸어가면....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부를 때마다 은혜가 되는 찬송이다.

왜냐 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늘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다고 하셨다.

피조물은 그림자가 있으나 조물주는 그림자가 없다.

하나님이 빛 되심은 피조물들이 그 앞에서 아무 것도 감추지 못함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무릎 꿇어 늘 기도함은 그 앞에서 투명해지려는 노력이다.

죄는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는 것들을 감추고 있는 행위이고,

회개는 감추지 못하기에 하나님께 늘 내어 놓고 자복하는 의로운 고백이고,

앞으로의 바른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주 앞에서의 결심이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이 자복과 결심은 주 앞에 갈 때까지 계속된다.

단번에 끊고 맺을 수 없기에 맹세할 수 없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주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

때로는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할 수도 있다.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주 앞에서 사는 빛 된 생활은 아무 것도 감춰서는 안 된다.

러기에 성경은 있는 그대로 기록되었다.

때로는 그 내용이 읽기 낯 뜨거운 부분도 있다.

즉 시아버지와 며느리, 아버지와 딸로 인한 종족 번식은 원시 형태의

인류 초기의 있었던 일이지만 현대인들이 읽기에 매우 민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삭제되지 않고 기록됐음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교주들이 만든 교리서나 영웅들의 자서전은 온통 좋은 이야기들로만 가득 차 있지만 진실이 없기에 생명이 없다.

  역사는 사실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독재자들은 영웅화와 우상화에 몰두하면서

있는 사실을 삭제하고 없는 것을 붙여 넣는다.

최근의 북의 김정일의 죽음을 놓고 말이 많다.

밤에 주로 활동하고 정오쯤에 일어난다는 사람이 아침 일찍 백성을 지도하려고 가다 열차 안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통제 속에 눈과 귀가 닫힌 북한 사람들 말고는 없다.

과거의 우리의 군부 독재 시절에도 우리의 언론은 감추고 편집하기에 급급했지만,

서방 세계의 기자들은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도 하였다.

국가의 기록인 역사도 정직하여야 하지만 개인기록인 일기도 정직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 앞의 행위록이 있음을 말한다.

행한 대로 심판 하신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다.

아무 것도 감추지 못한다.

빛 가운데 사는 신앙생활은 행위록을 땅에서부터 해결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죄 하나라도 마음속에 남겨 놓지 않고 늘 내어 놓으면서 처리해야 한다.

죄를 마음에 남겨 놓고 즐기면 기도가 막히고 영이 막혀 질식하게 되고 불안 초조로 평안을 잃는다.

그리고 우리 속에서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는 회개의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잃어버린 평안을 찾아야만 주안에 사는 삶이기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