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3 장 십자가는 천국이다
참다운 기쁨
나는 때때로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감옥, 고통, 박해 따위의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고통은 결코 고통이 아니다.
만일 내가 정말 고통을 느낀다면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여러 마을로 돌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이렇다.
언제든지 내가 사랑하는 구주를 위하여 고통을 당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지상의 천국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언제나 의문을 남길 수 없는 명백한 방법으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통은 내가 그리스도 신자가 도기 이전에는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그리고 지옥 가운데 있는 느낌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회개한 후부터는 고통이 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옥중에 갇혀 있었을 때에는 거기가 옥이 아니고 나에게 있어서는 지상의 천국이었다.
박해 속에서는 박해가 없었을 때보다는 더 큰 기쁨을 가지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호사한 생활을 할 때보다 더욱 큰 기쁨을 가졌다.
주님의 임재가 이런 기쁨을 나에게 주고 지상의 천국으로 만든 것으로써 그 누구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자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애무
네팔의 이로무에 가는 길에서 나는 마을을 지나면서 여러번 설교를 하였다. 사람들은 정성껏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 곳의 길은 실로 겁이 날 정도로 험하였다.
어떤 때는 높은 고개, 때로는 내리막 길 혹은 개천도 건너야 했는데, 이런 여행으로 나는 피곤해 지쳐 있었다.
1914년 7월 7일을 나는 언제나 상기한다.
험난한 여행으로 지쳤고 극도의 굶주림을 겪는 가운데 모질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7마일이나 되는 고개 길을 오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 무서운 돌풍이 불어 나를 언덕 밑의 한 동굴 속으로 쳐박아 넣었다.
그런데 나는 그처럼 높은 곳으로부터 떨어졌는데도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 동굴은 하나님의 애무로 변하였다. 거기에 상처 따위가 있을 수 없다.
그 곳은 낙원이었다.
돌풍은 사랑의 큰 여울이 되었고, 폭우는 은혜의 비로 변했으며, 기갈은 만족으로 바뀌고, 피곤은 청신으로 화했으며 십자가는 평화로 변하였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여러 모습이 환상으로 나의 앞에 나타났다.
첫째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세워 기도하시던 모습,
둘째로, 굶주리고 목 말라 하시던 모습,
세째로,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이 씌워져 피를 흘리시던 모습,
네째로는 그러한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모습....
그랬기 때문에 골고다의 언덕 길을 올라갈 때에 넘어지셨다.
나의 십자가 따위는 당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 사랑의 주님이시여, 당신의 십자가의 비할데 없는 사랑과 은혜로 인하여 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금 후에도 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 형언키 어려운 영혼의 평화를 이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고 무감각한 나의 형제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감춘 만나로써 그것을 받는 자 외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내가 직접 겪었던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즉 십자가는 그것을 지는 자를 받침해 준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고통이 가득찬 곳에서 평화의 물결 속으로 인도해 가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를 천국에 이르게 한다.
정부 관리와의 회화
나 :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의 생명을 얻게 하려고 만민을 부르셨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이 복음을 전할 것을 나에게 명령하셨다.
만일 당신이 그에 대한 신앙을 갖지 않는다면 그 날이 되어 지금 내가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서서 당신 앞에 펼쳐진 영원한 형벌의 선고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관리 : 그 때가 오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당신을 옥에 집어 넣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어떻게 당신을 구해 주는가를 지켜 볼 작정이다.
나 : 나는 투옥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내가 그런 것을 겁낼 정도라면 여기 와서 설교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취급당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나의 그리스도는 나를 감옥으로부터 해방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나를 죄와 사탄으로부터 놓여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이나 또 언제라도 자유롭다. 비록 당신이 나의 발에 족쇠를 잠그었다 할찌라도 나는 여전히 자유롭다.
관리 : 조용히 하라! 더 이상 말하면 안된다.
나 : 생명이 있는 한, 그리고 나의 혀가 입 속에 있는 한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그칠 수 없다. 족쇠를 풀라. 나는 나의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관리 : (검사관을 향하여) 이제 더 이상 이론할 필요가 없다. 그를 끌어다 옥 속에 넣으라
검사관 : 귀관, 우리가 이 이단자를 옥 속에 넣는다면 결과적으로 그 곳을 더럽히는 일이 될 것이오. 저 자를 괴롭히기 위하여 옥 속에 집어 넣었는데 그는 그것을 기쁨과 위로로 받아 들였소. 그러므로 다른 형벌로 벌을 줄 것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관리 : 그렇다면 우리의 영토 밖으로 추방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만약 그를 감방속에 넣어 두면 6개월 사이에 다른 죄인들이 모두 크리스챤이 될 가능성이 있다.
독방도 없는 처지니까....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영토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스도에의 접붙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접붙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생활이 가시로 가득차 있었지만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나무에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어떻게 하여 그처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몇년 후에 찾아가 보았다.
정원사가 그 나무에 접목을 했기때문에 가시 대신 좋은 열매가 맺혀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은혜로우신 주님은 우리를 손으로 붙잡아 열매를 맺게 하신다.
주님은 만인을 위하여 오신 것이며, 내가 지금 이야기 한 나무처럼 죄인을 성도로 변하게 하시는 것이다.
비루지스쾌에 한 도적이 있었는데 그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저런 인간은 도저히 변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놀랄만한 변화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변한 그를 보고 "어떻게 된 일인가?"고 물으니
도적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킨 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가 내 생명 속에 들어 오셔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나는 이 땅 위에도 그가 주시는 변화를 통하여 천국이 오게 한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나는 그처럼 흉악한 살인자였지만 지금은 설교자가 되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한 수렵자가 사냥을 하기 위하여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 나무에 꿀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총을 나무 밑에 놓고 기어 올라가서 꿀을 핥기 시작하였다.
그는 거기에 위험이 숨겨져 있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얼마 후 호랑이가 나무 밑에 다가왔다.
그는 "내가 위험한 곳에 있구나...."하고 생각하였지만 "나는 나무 위에 있으므로 위험을 면할 수 있겠지"하고 계속해 꿀을 핥았다.
나무는 강변에 있었으므로 만일 호랑이가 덤벼들면 강속에 뛰어 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물을 내려다 보니 거기에는 큰 악어 한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나는 궁지에 몰려 있구나. 죽을 때가 가까웠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여기에 그저 머물러 있어야 하겠다. 그러는 사이에 호랑이나 악어도 가 버릴 것이다"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위험은 곧 닥쳐왔다. 내려다 보니 들짐승이 나무 뿌리를 갉암먹고 있었으며 잠시 후 나무는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의 입장과 흡사하다.
우리들은 숲으로부터 나와서 살고 있다.
한 쪽에서는 악마가 잡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영은 나무 위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육체 속에 위험이 깃들어 있는 것을 잊고 죄의 꿀을 즐기는 일에 빠져 있다.
만일 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사탄이 엿볼지라도 안전하며 아무도 주님의 품으로부터 우리를 뗄 수 없는 일이다.
주님이 보시려고 하는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보일 수 있는 것으로써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생명의 열매인 것이다.
인도교에서는 착한 일을 행하면 만사가 잘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먼저 착한 사람이 되라. 그러면 선행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예수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하여 당신은 착하게 될 수 있다.
그 때면 당신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도적의 회심
나는 어느 때 베-레라라고 불리우는 고원지대의 산림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때 네 사람의 사나이들이 길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의 큰 사나이가 긴 칼을 들고 나에게 덤벼들었다.
도망갈 길이라곤 아무데도 없으므로 나는 몬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그는 내리치려던 손을 잠깐 멈추고 ㅅㅆ다가 내 어깨에 걸친 담요를 뺏아 가지고 가버렸다.
다시 길을 걸어 한참을 가고 있는데 그 사나이가 다시 나를 부르며 돌아 오라고 외쳤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나의 상상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그가 나에게 "누군가?"고 묻기에 나에 관한 이야기와 전도를 위하여 여행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내용은 그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여 "만일 부자가 아무런 도적질도 하지 않았는데 지옥에서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면 셀 수 없을만큼 도적질을 한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면서 겁을 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사죄하면서 담요를 되돌려 주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차를 끓이고 과일을 내놓았다.
그것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삿 14:14)는 것과 같으며, 주께서 "나의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시 122:5) 한 것과 같았다.
나는 그와 함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는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기의 저고리를 벗어 나에게 깔아 주었으며 한 쪽을 향하여 참회를 하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그 곳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그는 자기가 지난날에 저지른 죄행을 털어 놓았으며 한 동굴속에 있는 수많은 백골을 보이면서 "이것이 나의 죄입니다"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를 불쌍히 여겼지만 내 자신을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의 뼈다구도 그 속에 쌓였을 것이다.
그 후 나는 그에게 한 도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주님이 "오늘 너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였다.
그는 마음속에서 "주님이 자기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므로써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언젠가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으라고 권한 다음 평원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현재의 기쁨과 평화
나는 인도교의 한 사두와 만났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오랜동안 요가를 실행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동안이나 그것을 실행했는가고 물으니 13년간을 했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성실한 진리탐구자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노력을 들이고도 기쁨을 얻지 못했다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고 말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우리는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따름이지 이 세상에서 기쁨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래세에서의 기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나도 인도교도였을 때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였다.
즉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죄와 슬픔, 괴로움과 더불어 살게 마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에서 주님이 기쁨과 평화를 주신 증거를 보고 있다.
평화냐? 사랑이냐?
때때로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은 언제나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평화는 우리의 영혼의 목적이다.
우리는 금전을 얻기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하며 평화를 얻기 위하여 육체의 쾌락을 구한다. 그러나 참된 평화는 오직 주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랑의 하나님 안에서만이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 평화를 얻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없다.
당신은 그 사랑을 느낄 것이며 또 남에 대한 사랑도 느끼게 돌 것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누가 만족지 못한 것을 남에게 이야기 하려고 애쓰겠는가?
제일 중요한 일은 우리가 먼저 평화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후에 우리는 그것을 증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실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있는 놀라운 평화
수웨덴에서 나는 여러 곳을 여행하고 돌아 왔다는 한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구하여 그렇게 여행을 했는가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쾌락과 희열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 병과 슬픔이 없는 나라, 더위와 추위가 없는 나라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찾아내지 못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가 찾아낸 평화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 평화는 어떤 특정한 나라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고 말하였다.
그런 후에 "나는 이 평화를 입증하기 위해 여행을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주님은 백배를 주신다
나는 회개를 한 후에 유혹을 받았다.
먼저 나는 세례를 받지 않아도 크리스챤으로서 생활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족들의 박해때문에 먼 곳에 가서 비밀히 세례를 받을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였을 때 나의 마음속에서 평화를 볼 수 없었다.
비록 부모와 모든 것을 버렸지만 떳떳이 말하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평화를 받을 수 없었다.
나의 소신대로 행하였을 때 주님은 나의 요구를 충만케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로 백배나 은총을 베푸셨다.
비록 혀로 말할 수는 없어도 생활이 사실을 말한다.
어떤 날 명상과 기도를 드리는 중에 그리스도가 임재한 것을 강하게 느꼈다.
나의 마음은 하늘에 오른듯한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 때 나는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찬 이 세상 가운데 큰 기쁨이 숨겨진 무진장한 광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에 대해서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경험한 사람도 적합하게 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인식하게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쁨을 남과 나누고 싶은 절실한 생각에서 가까운 이웃 마을로 향해 떠났다.
그 때 나의 건강치 못한 육체와 간절한 소원과의 사이에 영육의 싸움을 일으켰다.
영혼을 갈 것을 원하였고, 육체는 뒤로 처지려고 했으나 드디어 영혼이 이기어 병든 몸을 이끌고 마을로 갔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나에게 임하였던 경험을 이야기 하고 그드로 이같은 경험을 얻도록 종용하였다.
그들은 내가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와서 이야기 할 때에에는 반드시 내적인 어떤 강요에 이끌려 그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일한 경험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통역하여 그들은 신앙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생활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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